연예인 아들~ 듬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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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공중파 방송을 타고 유명인이된 연예인 듬직이의 처음 엄마 양현정입니다~
지금부터 일명 연예인의 사생활??찌라시??을 공개하려고 합니다~
입사후 얼마 되지 않아 아가방이 생기고 너무 예쁜 두아가들이 새로 입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아가들을 데리러 나주 영아원에 가는데 사진으로 보았던 아가들의 얼굴이 떠올라 올라가는 차안에서 아가들 생각을 하며 올라갔습니다.
영아원에서 처음 예린이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눈이 정말 크고 귀여운 예린이는 큰 눈을 깜박거리며 낯선 우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유전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입양이 힘든점과 예린이의 상태를 설명듣고 듬직이를 기다렸습니다.
사진속의 듬직이는 문메이슨보다 더 잘생긴 외모로 아가방 엄마들의 마음을 모두 설레게 하였는데 실제 듬직이는 어떨지 매우 기대하며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듬직을 바라보았습니다.
머리에 비해 아주 외소한 몸을 갖고 하얀피부와 밝은 색의 머리카락, 큰눈과 오똑한 코를 보고 한번에 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듬직이를 보시던 선생님이 듬직이를 제 품안에 안겨 주는데 너무 깜짝 놀라 아이를 떨어뜨릴뻔 했습니다.
머리와 엉덩이를 바치고 있는 손이 떨려 두손을 꼭 잡고 아기를 안았습니다.
이제껏 안아봤던 살결이 보드랍고 포근한 그런 아기 살을 만지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치 깡마른 나무토막을 부서지지 않게 조심히 안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등은 굽은 상태로 강직되어있었고, 팔과 다리, 손과 손가락은 펴지 못한채 굳어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안고 내려오는 내내 저는 듬직이와 함께 굳어버렸습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깡마른 나무토막이 부서질 것 같아서였습니다.
한시간 조금 넘는 멀지 않는 거리였지만 저는 삼혜원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예린이는 낯을 많이 가리고 많이 울었지만 듬직이는 이름만큼 듬직하게 울지 않고 제 품에 안겨서 내려왔습니다.
처음 듬직이는 잔잔하게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어야 잘 자고 스탠드 조명에 수건을 덥은 은은한 조명불이 있어야 불안해 하지 않고 잘 수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듬직이는 클래식 음악도 은은한 조명도 필요 없었지만 다른 아이들 누구 보다 더 엄마의 체온을 느끼며 자길 원하는 아이로 변하였습니다. 손을 너무 타서 일까요;;;;하하
혼자 걷지 못한다는 것을 다른 아이들이 모두 누워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다른 아가들이 걸음마를 배우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는 듬직이의 눈은 슬퍼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들은 더 슬펐구요.
다른 아가들이 말을 배우고 “엄마, 맘마”할 때 듬직이는 그저 옹아리만 할 뿐이었습니다.
입술을 잡고 엄마를 가르키자 어~~~마하고 말해줄때는 눈물만 앞을 가렸더랬죠;;
꾸준한 재활치료와 마사지로 듬직이는 목도 가누고 의자에 혼자 앉아 조금 버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 사진 찍을 때만 해도 목을 못가누고 지지대가 없으면 계속 쓰러져 사진이 잘나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예린이가 옆에서 든든하게 버텨주어 돌 사진은 순조롭게 잘 찍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아가들도 그렇겠지만 듬직이는 모든 엄마들과 삼혜원의 사랑과 노력으로 자랐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듬직이의 재활 의지와 눈물이지요~
그렇게 듬직이를 2년 가까이 돌보고 듬직이도 저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지금 저는 더 이상 삼혜원 직원이 아닌 동백원 직원이 되었습니다.
듬직이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그런 사회복지사로 남아있을것입니다.
듬직이를 키우면서 장애에 대한 거부감도 사라지고 장애를 어떻게 감당하냐, 어떤 사회복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현재는 동백원에서 재가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보조사업 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동백원에 속한 재가 장애인들이 나를 통해서 좀 더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저를 조금 더 나은 사회복지사로 만들어준 듬직이에게 감사하며,,,
“현정엄마가 맛난거 사서 놀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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